본문 바로가기
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발칙한 소녀들의 조상 [레이디스 앤 젠틀맨, 더 페뷸러스 스테인즈]

by flexwave 2021. 12. 6.

발칙한 소녀들의 조상 [레이디스 앤 젠틀맨, 더 페뷸러스 스테인즈]

516 읽음2014. 03. 06.
댓글0
번역 설정
영화 속에 발랄한 소녀들은 많았다. 그러나 발칙한 소녀들은 흔치 않았다. 이런 소녀들의 조상격인 영화가 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더 페뷸러스 스테인스>다.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던 평범한 소녀 코니는 우연히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인다. 이 내용이 여과 없이 방송에 나가자, 일하던 페스트푸드점의 사장은 그녀를 해고한다. 그러나 이 발칙한 인터뷰 때문에 코니는 일약 스타가 된다. 내친김에 그녀는 펑크록 밴드를 결성한다. 이것만 보면 청춘영화 내지는 보통의 록 음악영화와 다를 게 없다. 스토리 자체가 거대한 클리셰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서둘러 봉합되는 통에 결말은 상당히 어색하고 허무하다. 82년 작인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패션은 이미 77년에 한 차례 폭발한 펑크 패션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라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비주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영화는 상업적으로 망했다. 심지어 재개봉관에도 걸리지 못했고, 소규모 예술영화 극장이나 심야 케이블 방송에서 상영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코니의 태도가 당시 매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면서 밴드를 결성했다. (실제로도 코니 역의 다이안 레인은 엄청난 음치로 유명하다.) 연주가 안 되면 욕설과 함께 연설을 하곤 했다. 절반 이상이 욕이었던 이 연설은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에 대한 메시지가 가득하다. 코니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남자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린 캐릭터로 알려졌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더 이상 남자들에게 소비되지 않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는 ‘Be Yourself!’. 아직 록스타를 꿈꾸던 젊은 시절의 존 본 조비나 커트니 러브가 이 영화에 열광했다고 한다.
 
특히 뒤늦게 <레이디스 앤 젠틀맨, 더 페뷸러스 스테인즈>에 감동한 일군의 소녀들이 코니의 담대한 태도에 영향을 받는데, 이들은 1990년대 초 ‘롸이엇 걸(Riot Girl)’이라고 하는 새로운 펑크 무브먼트를 일으킨다. ‘비키니 킬’이나 ‘L7’ 같은 밴드들은 코니처럼 부족한 연주력을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로 메우며, 대중음악의 페미니즘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리고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 뮤지션의 이미지를 확립시켰다. 레이디 가가, 비욘세, 마일리 사이러스 등, 최근 주류 팝의 당당한 여전사들도 이 영화의 영향 아래 있다.

또 다른 재미는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는 것이다. 수년 뒤 <스트리트 오브 화이어>의 여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다이안 레인이 주인공 코니 역할을 맡았고, <베오울프>와 <디파티드>에서 열연을 펼친 레이 윈스톤이 다른 밴드 루터스의 보컬로 등장한다. <광란의 사랑>, <쥬라기 공원>에서 열연을 펼치는 로라 던도 코니의 사촌이자 밴드멤버로 등장한다. 루터스의 멤버들은 전설적인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와 ‘더 클래시’의 멤버들이다. 심지어 감독은 <록키호러픽쳐쇼>를 제작했던 루 애들러다. 그럼에도 영화는 망했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런 영화로 인생의 철학이 바뀐다.

 
 
 
 
저작권자 ⓒintersecti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글쓴이 임정원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