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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부활했던 엽기 다큐멘터리 [쇼킹 아시아]

by flexwave 2021. 12. 6.

세기말에 부활했던 엽기 다큐멘터리 [쇼킹 아시아]

1,735 읽음2014.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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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괴작은 아시아의 엽기적인 문화만을 골라 담은 다큐멘터리 <쇼킹 아시아>다. 1997년 한국 개봉 당시 100만 명을 훌쩍 넘는 숫자가 극장을 찾았고,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서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이 영화가 당시 대한민국의 심의 기준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쇼킹 아시아>의 원조는 세계의 기이한 풍습을 모아 놓은 다큐멘터리 <몬도 가네>(1962)라 할 수 있다. <몬도 가네>는 그 독특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화를 비하하지 않는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이탈리아인 갈리에로 자코페티와 파올로 카바라가 감독한 다큐멘터리영화인데, 그들은 아프리카나 동양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행위와 이른바 문명사회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북미의 일상을 나란히 배치했다.
 
 
 
 
대만의 개고기와 뉴욕 시내의 벌레 식당을 같이 보여주는 식이었다. 문화라는 것이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며, 다만 인간의 존엄성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전 인류가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고 있다. 깊은 성찰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만든 이 작품은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후에 국내에도 개봉되었는데, 엽기적인 행위나 음식을 즐기는 것을 보고, ‘몬도가네식’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몬도 가네>의 인기에 힘입어 쇼큐멘터리(Shockumentary)라는 장르가 확립된 뒤, 세계 각지에서 아류작들이 양산되었는데, <쇼킹아시아>는 이러한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독일과 홍콩 합작으로 만들어진 &lt;쇼킹아시아&gt;는 오로지 자극적인 소재로 열거하기에 바쁜 작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어딘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야만적인 이들을 보라.”고 전시할 뿐이다. 그 문화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오로지 눈요기를 위해서 힌두교의 장례의식, 일본의 정력 요리, 동남아의 트랜스젠더 등을 철저히 구경거리로만 전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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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소인증 장애인들의 프로레슬링은 서유럽이 원조인 ‘프릭 쇼’를 닮아있고, 일본의 성기 축제는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남근숭배 중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일본의 전통 문신인 ‘이레즈미’ 역시, 세계 각지의 문신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뭔가 문화적인 발자취를 남길 욕심이 있었는지, “그렇다, 이것도 인류의 일부이고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한다.”라는 공허한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를 끝맺는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는 지구본이 돌고 있다.

1974년 제작된 이 영화는 국내에 20여 년이 지나 1997년에 개봉했다. 아시아를 철저히 야만의 공간으로 그려놓은 것에 대해 공분이 있었으나, 당시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타고 유행한 ‘엽기’라는 키워드와 함께, &lt;쇼킹 아시아&gt;는 우리나라에서 제법 잘 팔려나갔다. 여러 가지 엽기적인 장면 중에서도 성전환 수술장면이 나온다는 내용이 특히 많은 사람을 자극했다. 극장을 뛰쳐나왔다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 보다가 졸도한 사람이 나왔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극장은 더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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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쇼킹 아시아’지만,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이 영화를, 우리는 어쩌면 오만한 서양인의 시선으로 관전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당시 철저하게 표백된, ‘서구 문명화’된 한국 사회의 관객들에게 “우리는 저것보다는 낫겠지.”하는 얄팍한 자긍심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불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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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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