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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톡식 어벤저]

by flexwave 2021. 12. 6.
영화는 대부분 멋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그래서 20세기 초반의 철학자들은 종종 영화라는 것은 진실 위에 덮인 가짜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멋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은 영웅들도 있다. ‘괴작 익스프레스’의 이번 이야기는 이런 안티 히어로물 중에 가장 대표적인 <톡식 어벤저>를 소개한다.
<b> &lt;톡식 어벤저&gt;의 포스터. 소외된 계층의 상징, 대걸레를 들고 있다. </b>
트로마 엔터테인먼트는 로이드 카우프먼과 마이클 허츠라는 두 명의 예일대 출신 괴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사다. 전 세계 B급 영화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독립 영화사는 ‘잔인하고, 야하고, 웃긴 영화’를 만든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톡식 어벤저>는 이런 트로마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대표작으로서, 트로마는 <톡식 어벤저>의 괴물을 회사의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많아서 트로마 영화사의 작품들은 각종 영화제에 자주 초청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7년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로이드 카우프먼 사장이 초청되어 ‘국제 괴짜’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톡식 어벤저>는 4편까지 제작되었고, <톡식 크루세이더>라는 제목으로 만화와 게임이 제작되거나 <톡식 히어로>라는 제목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B급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b> 헬스장 청소부인 멜빈, 킹카들에게 놀림당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b>
가상의 마을 트로마빌의 헬스클럽에는 병든 닭처럼 왜소한 체구의 멜빈이라는 젊은이가 일하고 있다. 물론 트레이너가 아니라 청소부다. 이 병약한 친구는 헬스클럽의 수많은 몸짱 악당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악당들은 멜빈을 놀려줄 궁리를 하다가, 미인계를 이용해서 멜빈을 꾀어낸다. 멜빈은 보기 좋게 걸려들고, 수치심에 도망치다가 창문에서 떨어진다. 하필 그 아래에는 유독성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이 있었다. 멜빈은 유독성 폐기물에 빠졌다 나온 뒤, 흉측한 괴물의 형상이 되지만 동시에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 이제 괴물이 된 멜빈은 자신을 괴롭혔던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동시에 사회의 수많은 약자를 위해 싸우는 슈퍼 히어로가 된다.
<b> 유독성 폐기물 통에 빠진 멜빈은 흉측한 괴물이 된다. </b>
그런데 복수를 하는 모양새가 너무 잔인하다. 자신을 괴롭혔던 헬스장의 악당들은 사우나 스팀기에 구워버리거나 가위로 찔러 죽이고, 패스트 푸드점에 난입한 강도들은 믹서기에 얼굴이 관통당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길 건너는 노인을 돕거나, 병뚜껑이 안 열려 고생하는 주부를 도와주는 등 소박한 영웅의 모습도 잃지 않는다. 어느 날 인신매매범을 응징한 후, 그가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는 헛소문이 퍼진다. 트로마빌 시장(물론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나온다.)은 주 방위군까지 동원하여 괴물을 사살하기로 한다. 그에게 총구를 겨누는 순간, 놀랍게도 수많은 시민이 총구를 막아선다. 단결한 시민들이 영웅을 구해낸다. 결국, 괴물은 부패한 시장의 내장을 꺼내버린다(!). 그리고 모두가 환호하는 와중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b> 패스트 푸드점에 난입한 악당들. 톡식 괴물에 의해 팔이 뽑히거나 손이 끓는 기름에 튀겨진다. </b>
<b> 한편으로는 길을 건너는 노인을 돕고, 열기 힘든 병뚜껑을 열어주는 자상한 영웅. 괴물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린다. </b>
<톡식 어벤저>는 B급 고어영화의 가장 유명한 고전 중 하나다. 저예산 영화답게 특수효과는 엄청나게 엉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한껏 과장 되어있다. 머리가 터지고 팔이 뽑혀나가는 잔인한 장면도 많다. 마치 만화가 김성모처럼 만들어 놓은 장면을 여기저기 재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잔인하고 엉성한 표현들이 당시엔 아주 새로운 표현이라며 주목받았다. 주류가 아닌 사람이 주류가 아닌 방법으로 잘난 악당을 응징하는 <톡식 어벤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그래서 단순히 잔인하고 웃긴 이 영화에 (트로마 영화사의 제작의도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의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권세가들의 횡포가 갈수록 가득해지는 요즘, 혹시 우리는 톡식 괴물의 등장을 내심 바라는 게 아닐까. 잘난 악당들을 튀기고, 뚫고, 태워버릴 누군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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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