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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성인 취향의 우주 오리 이야기 [하워드 덕]

by flexwave 2021. 12. 6.
8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는 대적할 상대가 없었고 [터미네이터], [람보], [로보캅] 등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국내 극장가를 강타했었다. 그중에서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추앙받던 조지 루카스도 관련된 모든 작품에서 신화를 남긴 것은 아니다. 오늘의 괴작은 조지 루카스가 기획한 우주 오리 이야기, [하워드 덕]이다.
지구와 평행우주를 이루고 있는 한 행성에는 오리에서 진화한 종족이 살고 있다.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면 이들은 오리에서 진화한 것이다. 하얀 털로 덮여있지만, 옷을 입고, 차를 몰고, 플레이 덕(!)이라는 성인 잡지를 보며 산다. 이들 중 하워드라는 오리가 알 수 없는 광선에 이끌려 지구에 떨어진다. 하워드는 지구에 와서 놀림도 당하고 괴물 취급도 당하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착해간다. 그러던 중 다이나 연구소의 레이저 장치가 그를 지구로 오게 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하워드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연구소를 찾지만, 자신이 지구에 떨어질 때 함께 온 외계인의 계략으로 우주 괴물들이 광선을 타고 지구를 침략한다.
롤링 스톤즈 지의 오리 판인 ‘롤링 에그’와 플레이보이의 오리 판인 ‘플레이 덕’
스토리만 본다면 평범한 어린이용 오락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무엇을 노리고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워드 덕]은 어린이 영화도 아니고 성인 영화도 아니었다. 최근에는 [슈렉]이나 [가필드]처럼 어린이와 성인의 눈높이를 능숙하게 오가는 작품들이 많지만, [하워드 덕]의 유머코드는 지나치게 성인 지향이었다. 일단, 하워드 덕 자체가 시가를 좋아하는 애연가인 데다가, 밤이면 바에서 칵테일과 맥주를 즐기는 상남자인 것이다. 오리와 인간의 종을 뛰어넘는 베드씬은 아이들이 보기에 상당히 노골적이다.
하워드 덕의 상당히 어른스러운 일상들
생업 전선에 뛰어든 하워드 덕.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조지 루카스야말로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를 통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활극을 만드는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워드 덕]의 감독을 맡은 윌러드 휴익 역시, 조지 루카스가 연출한 [청춘낙서], [인디애나 존스] 등에 각본가로 참여하며 손발을 맞춰왔었다. 걸쭉한 성인 농담이 넘쳐나는 것 치고는 ‘12세 관람가’라는 등급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팀 로빈스, 제프리 존스 그리고 한참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백 투더 퓨처]의 리 톰슨 등의 명배우들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조지 루카스가 우주를 그리고, 윌러드 휴익이 왁자지껄 풀어낸 이 우주 오리 이야기는 흥행에 참패한다. 영화는 3천5백만의 제작비를 들여, 1천6백만 달러 남짓한 이익을 거두는 데 그친다. [하워드 덕]은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골든 라즈베리에서 작품상을 받는 것으로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다.
팀 로빈스, 리 톰슨 등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던 야심작이었다.
[스타워즈]의 특수효과팀이 참여한 장면들 역시 훌륭하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하워드 덕이 사실 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하워드 덕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월트 디즈니가 ‘도날드 덕’을 표절한 게 아니냐며 격하게 항의했었는데, 이후 마블이 하워드 덕에게 바지를 입혀서, 도날드 덕과는 ‘다른 오리’라며 박박 우기면서까지 놓지 않았던 인기 캐릭터다. 마블의 캐릭터가 총출동하는 ‘시빌 워’에서 하워드 덕은 무기 전문가로서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 [하워드 덕]은 인생의 곡절을 많이 겪었던 원작의 하워드 덕과는 약간 다르게 각색되어있다. 최근 실감 나게 구현되는 마블의 캐릭터들 사이로, 이 매력적인 오리가 나타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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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
201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