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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괴작 익스프레스] 돌아온 술주정뱅이

by flexwave 2021. 12. 6.
[괴작 익스프레스] 돌아온 술주정뱅이
대체 무슨 정신으로 만들었을지 궁금한 작품들을 만나본다.
첫 번째는 허튼 청춘들의 허튼 이야기 : 돌아온 술주정뱅이
영화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비주류 영화들을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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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응집력이 부실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대체 무슨 정신으로 만들었을지 궁금한 작품들이 왕왕 제작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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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자본이 완고하게 시장을 틀어쥐지 않았던 시대, 정치적으로도 혼란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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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일본에는 이러한 괴작들을 쏟아내는 감독들이 많았고, 그 정점에는 오시마 나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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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재일코리안(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가리키는 말로, 남과 북 어느 쪽을 지칭하기 모호한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을 소재로 일본사회의 국제문제에 대한 인식을 지속해서 환기한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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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lt;교사형(絞死刑, 1968)&gt;에서 사형제도의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재일코리안의 빈곤과 현실을 조명한 바 있는데, &lt;돌아온 술주정뱅이&gt;는 그보다 한결 가볍고 유쾌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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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돌아온 술주정뱅이(帰って来たヨッパライ)의 포스터. 일단 포스터부터 제정신이 아니다.
이 영화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는 영화 <박치기>에 흐르는 노래 ‘임진강’으로 약간 알려진 있는 일본 밴드의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의 첫 싱글이자, 오리콘 차트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던 노래 ‘돌아온 술주정뱅이’가 1968년 대히트를 한다. 이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서 동명의 영화가 제작 된 것이고,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의 멤버 3명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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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바닷가에서 노는 세 사람.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 청춘영화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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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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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3명이 간사이 지방의 해변으로 놀러 온다. 특이하게도 수영을 하거나 여자에게 치근덕거리는게 아니고 서로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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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을 겨누는 장면은 작품에서 수없이 반복되는데, 이 비밀은 영화 마지막에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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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벗어놓은 옷을 누군가 훔쳐간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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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밀항자들이 옷을 바꿔입고 도망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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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한국 군복과 한국 교복을 입고 마을로 돌아온 이들은 되려 밀항자들로 오인당하여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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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을 피해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의 옷을 바꿔 입고 마을을 빠져나오려 하자, 이번엔 주인공들의 옷을 훔쳐 입은 한국인 밀항자 두 명이 나타난다. 완벽한 신분 세탁을 위해 자신들의 ‘한국 옷’을 입혀 주인공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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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권총을 겨누자 기겁하며 ‘길바닥에서’ 옷을 갈아입은 주인공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옷을 바꿔 입는 것은 중요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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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밀항자들에게 도망을 치지만, 타국의 군복과 교복을 입은 터라 얼마 못 가 경찰에게 붙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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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종일, 김화, 밀항 죄로 체포한다!”며 쇠고랑을 채우는데, 주인공 3명 중 1명은 대학생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쇠고랑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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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요?”라고 묻자, “너는 그냥 너다.”라며 세 명을 세트로 다 체포해버린다. 심지어 3명을 배에 태워 한국으로 추방하는 꿈 장면에서는 제작비가 없었는지 그냥 근처 공원 호숫가의 쪽배에 태워 반대편으로 보낸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 대충 이딴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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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동해’를 건너서 한국으로 압송되는 세 사람. 건너편에 바로 한국이 보인다. 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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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다시 도망 중에 우연히 만난 여인과 여인의 아버지인지 남편인지 모를 남자가 끼어든다. 이제는 서로서로 죽이려는 이유도 뒷전이고 앞뒤 설명 없는 소동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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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의기투합해서, 한국인 대신 죽일 일본인을 찾아 나선다. 시간적 순서도 엉망진창이 된다. 갑자기 영화 초반부에 탔던 트럭에서 잠을 깨면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질 않나, 영화 중반에 죽은 한국인 밀항자들을 기차에서 다시 만나질 않나. 영화는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고, 과거의 기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면서 횡설수설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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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아예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번화가에서 대신 죽일 일본인을 찾는 세 주인공.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이이에, 와타시와 캉코쿠징 데스(아니요,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답한다. 감독은 ‘사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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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인 밀항자 두 명은 경찰에게 붙잡힌다. 이들은 무자비하게도 즉석에서 총살을 당하게 되는데, 뒤쪽에 보이는 벽화는 퓰리쳐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에디 아담스의 사진 ‘사이공식 처형’의 벽화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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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지속해서 주인공들이 권총장난을 왜 해왔는지, 영화 중간마다 권총처형 장면이 왜 나왔는지를 일거에 알게 해 주는 장면이다. 이때 한국인 밀항자 2명이 죽을 운명에 처하자, 밀항자들에게 몇 번이고 죽을 뻔 했던 주인공들은 웬일인지 “내가 이종일이다!”, “내가 김화다!”라며 앞다투어 소리를 친다. 국제연대를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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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영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처형장면. 이들이 정말 죽이고 싶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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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돌아온 술주정뱅이&gt;는 국제문제에 대한 일본 젊은 세대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 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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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섞고 비틀고 끊음으로써 의식의 혼란을 초래하는 괴작이지만, 그런 혼란함을 통해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한 걸작이기도 하다. 군복과 교복으로 대변되는 ‘이름’, 그러니까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한 ‘이름’을 벗어 던지고자 했던 수 많은 무정부주의적 청춘들의 외침이었다. 그렇게 60년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애잔함을 마음에 품고 ‘이종일’과 ‘김화’라는 이름들이 바다 건너에서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동의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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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는 허튼 청춘들의 허튼 이야기로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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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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