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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홍콩에 온 미녀 로보캅 [철갑무적 마리아]

by flexwave 2021. 12. 6.

홍콩에 온 미녀 로보캅 [철갑무적 마리아]

741 읽음2014.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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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으로 대표 되는 누아르 영화들과 90년대 초 <동방불패>, <황비홍>으로 이어지는 무협영화들은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만들어 냈다. 무섭게 성장한 당시의 홍콩영화 시장은 누아르와 무협물 이외의 장르에도 관심을 둔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태어난 괴작이 홍콩의 미녀 로보캅 이야기, <철갑무적 마리아>(1988)다.

언뜻 보기에도, &lt;로보캅&gt;(1987)의 아류작 같은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다. 폭력조직 ‘영웅당’은 거대 로봇 PR1으로 도시를 지배하려 한다. 영웅당 보스의 애인 마리아를 본떠 만든 미녀 로봇 PR2 역시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한편, ‘영웅당’에 염증을 느껴 조직을 떠난 위사기를 응징하고자 PR2가 출격하지만 고장이 나고 만다. 이에 왕따 과학자 배추머리가 PR2를 착하게 개조하고, 능력 없는 기자 장지강, 조직을 등진 위사기등이 의기투합해서 영웅당의 악행에 정면으로 맞선다.

젊은 날의 양조위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 서극

바로 다음 해에 &lt;첩혈쌍웅&gt;에서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변신했던 엽청문과 우리들의 영원한 영환도사 임정영

엉성한 줄거리에 비해 출연진은 어마어마하다. 일단 조직을 빠져나온 위사기 역을 서극이 맡았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명감독이자 명제작자인 서극의 코믹연기는 의외로 볼만하다. 특종을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무능력한 장지강 기자, 다름 아닌 양조위다. 전 세계 여심을 들었다 놨다 하는 눈빛이 멍청한 뿔테 뒤에 한 번씩 오간다. 영웅당의 전 보스도 영웅당에 함께 맞서는데, 우리에게 ‘영환도사’로 익숙한 배우 임정영이다. 마리아와 PR2호기를 오가며, 1인 2역을 펼친 여배우는 <첩혈쌍웅>에서 맹인 여가수 역을 맡았던 엽청문. 보스의 냉혹한 애인 역과 백치에 가깝게 개조된 마리아 (PR2)를 오가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PR2호기, 그러니까 마리아의 디자인은 <로보캅>의 영향이 크다. <로보캅>의 경우 3편에 이르러 추가로 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날 수 있었으나, 마리아는 기본적으로 비행능력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마리아는 위대한 SF고전 <메트로폴리스>의 인조인간 마리아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이런 오마주가 <메트로폴리스>에서처럼 계급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로보캅>에서 로보캅의 숙적으로 2족 보행 로봇 ED-209가 있었다면, 마리아에 대항하는 로봇은 PR1호기다. 이건 또 아무리 봐도 <기동전사 건담>의 ‘자쿠’와 흡사하다. 일본 특촬물에서처럼 사람이 탈을 쓰고 움직이는 것을 촬영했는데, 장면에 따라 로봇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들쑥날쑥하다. 영화의 백미인 PR1과 마리아의 전투장면 연출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의 영향이 크다.

로보캅보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마리아

이외에도 당시 80년대 문화 아이콘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다. 위사기의 도망씬은 80년대 동아시아에서 폭넓은 인기를 얻은 TV 시리즈 <타잔>의 줄타기 장면을 무헙환타지적으로 해석했다. 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전격 Z 작전>과 나란히 인기를 끌던 <검은독수리>(원제: STREET HAWK)의 전투 오토바이와 유사한 오토바이가 나오기도 한다.

난데없이 뮤지컬 영화로 끝이 난다.

장르적인 경계도 엉망진창이다. 일단 로봇이 나왔으니 SF 물이지만, 거기에 백치가 된 마리아와 다른 주인공들과의 로맨스도 있다. 첨단 로봇과 각종 발명품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몸과 몸이 부닥치는 권격액션도 빠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코믹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엔딩 크레딧은 갑자기 뮤지컬 영화처럼 끝난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것이 굳이 잘 정돈되고 세련될 필요가 있을까? 리부트 된 <로보캅>의 개봉에 맞춰 다시 꺼내 본 <철갑무적 마리아>는 다양한 80년대의 아이콘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타임캡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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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
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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