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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체주의에 도전장을 던진 영화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

by flexwave 2021. 12. 6.

일본 전체주의에 도전장을 던진 영화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

489 읽음2014.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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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체주의에 도전장을 던진 영화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
와카마츠 코지는 전후 일본 사회를 끊임없이 뜯어보고 찔러보던 감독이었다. 불꽃같은 작품을 남겼고, 정치적으로 맨 끝에 서 있던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는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상으로 관객을 괴롭혔고, 적군파의 친구였으며,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사회의 이면에 허무가 존재함을 고발했다. 그런 그의 작품 중 가장 기괴한 걸작이 바로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1969)다.
 
 
영화는 초저예산으로 3일 만에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빌딩 옥상이라는 공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장면마다 다양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실은 흑백으로, 과거는 컬러로 표현되며, 살해 장면은 만화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 그림 중에는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샤론 테이트의 사건 현장 삽화가 섞여 있다.)

이미지=ⓒ와카마츠 코지

옥상에서 윤간을 당한 소녀는 이를 지켜봤던 소년에게 자신의 더럽혀진 몸을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소년은 이미 자신을 성적인 노리개로 괴롭히던 또 다른 난교집단을 죽인 후였다. 결국 소년은 소녀를 윤간한 집단을 모두 찔러 죽인다.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끼던 둘은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일본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표류하던 두 인간이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이탈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 신좌파 그룹 안에서 소외되는 개인을 그린 것일 수도 있고, 일본의 전체주의 자체에 대한 항거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지=ⓒ와카마츠 코지

영화는 이렇게 복잡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어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옥상으로 표현되는 폐쇄사회 속에서 이 ‘개인'이 보호받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겁탈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소년은 집단에 저항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소년은 또 다른 ‘개인'인 소녀를 죽일 이유가 없었기에 끝까지 죽이지 않는다. 동질감으로 연대하지만 결국 서로 고립된 개인이라는 점은, 전공투 세대(60년대 일본의 운동권 학생)의 “연대를 구하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구호와 다르지 않다. 이는 60년대 후반 일본의 청년 문화를 상징하는 슬로건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 등장한 개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관객에게 딱히 동의를 바라지 않는다. 동의는커녕 끝끝내 자신들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림으로써 누구의 손길도 거부한다.

이미지=ⓒ와카마츠 코지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개인이 전체주의 밑에서 겪는 고통에 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평생 이야기해왔다. 특히 2차 대전에서 사지를 잃은 전쟁영웅의 전후 일상을 다룬 <캐터필러>(2010)는 60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국가에서 ‘군신’이라는 호칭을 받은 전쟁영웅 구로카와의 아내역을 맡았던 테라지마 시노부가 은곰상(여자 연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영화라는 무기로 전체주의와 50여 년을 싸우다가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난다. 떠나시던 해에도 2편의 영화를 연출할 만큼 정열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당대의 젊음이 국가라는 폭력 앞에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잘 그려냈고, 마치 사정하듯 영화를 분출했다. 대단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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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
2014.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