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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투쟁생활 [파티 51]

by flexwave 2021. 12. 6.

즐거운 투쟁생활 [파티 51]

211 읽음2015.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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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삼거리에 위치한 ‘두리반’이라는 밥집이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지만 부부가 성실하게 운영하는 그야말로 그냥 ‘동네 밥집’이었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리반 건물이 개발을 위한 재건축 대상이라며 퇴거 통보를 받는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주인 내외는 용감했다. 얄궂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용역 직원들에게 쫓겨났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단기로 철제 외벽을 뚫고 건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한다.

사장 안종려씨의 남편 유채림씨는 작가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인천 작가회의 소속의 작가들이 찾아와 농성을 함께한다. 더불어 경제논리로만 밀어붙이는 이 지역의 재개발 문제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홍대 앞 밴드 몇몇이 반응한다. 가뜩이나 홍대 인근의 땅값이 오르는 통에 공연할 만한 작은 클럽들이 두리반과 비슷한 처지를 겪는 중이었다. 밴드들은 연대의 의미로 두리반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재밌는 현상이 일어난다. 농성이 537일이나 계속되면서 두리반 건물은 어느새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됐다. 두리반에 다양한 이유로 눌러앉은 예술가들은 아예 ’51 플러스’라는 페스티벌까지 연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화려한 해외 뮤지션도 없고, 대기업의 그럴싸한 스폰서쉽도 없었지만 페스티벌은 의미 있는 흥행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리반의 예술가들이 펼친 이 새로운 방식의 농성은 승리로 끝난다. 2011년 안종려씨는 마포구청에서 배상금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담긴 합의서를 받아낸다. 이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바로 <파티 51>이다. 정용택 감독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리반에서 먹고 자면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냈다. 두리반 투쟁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진 뮤지션들의 행보와, 또 다른 철거 분쟁 현장인 명동의 카페 ‘마리’로 옮겨간 사람들이 겪는 폭력을 담아내며 의미를 확장해 간다.
 
두리반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첫 장면은 매우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제 막 초보 티를 벗은 뮤지션들이 찾아와 신 나게 공연하는 모습과 암울하고 막연한 앞날을 걱정하는 농성 당사자들의 모습이 묘한 이질감을 낳는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섞이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며 진행된다.
한편으로 뮤지션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겪으면서 음악이 주업인지, 투쟁이 주업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 연대를 놓지 않는다. <파티 51>은 철거 농성에 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뮤지션들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뮤지션들은 연대를 위해 기운차게 찾아간 다른 시위 현장에서 냉대를 받기도 하고, 그보다 더 생소한 장소에서 공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뮤지션으로서 내적인 성장을 이룬다. 요즘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받, 권용만등 자신의 우주가 확실한 뮤지션들의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처음에는 짧은 머리의 대학생 같은 모습을 했던 인디 뮤지션 ‘회기동 단편선’이 긴 머리의 히피같은 모습으로 진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파티 51>은 끝까지 어떠한 명확한 결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영국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세미 다큐멘터리 <더 그레이트 록 앤 롤 스윈들>이나 또 다른 밴드 ‘더 후’를 다룬 영화 <더 키즈 아 올라이트>를 감상할 때처럼 왁자지껄하고 주체못할 에너지가 기분 좋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의 취향대로 영화의 기승전결을 만드는 요즘, 젊은 예술가들이 작은 정의를 이루었다는 이야기 따위, 일반 관객에겐 잠깐 스쳐 지나가는 괴작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12월 야심 차게 개봉한 <파티51>은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블록버스터들의 배급전쟁에 밀려 며칠 만에 상영을 마감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재개발로 밀려났던 두리반의 처지와 다를 게 없었다. 자체적으로 작은 상영관을 찾아가는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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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