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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에로영화의 나라사랑 <안녕 도오쿄>

by flexwave 2021. 12. 6.

에로영화의 나라사랑 <안녕 도오쿄>

985 읽음20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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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반공과 극일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다. 북한에 대항하고 일본을 넘어선다는 이런 식의 구호들은 메이지 유신 시대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와 많이 닮아있긴 했지만, 제법 유용한 통치 수단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통치이념 속에서 ‘반공영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있었다. 심지어 대종상에서 ‘반공 영화상’이라는 부문이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오늘의 괴작 <안녕 도오쿄>다.
김희정 기자는 취재차 일본을 방문하여, 한일신문 도쿄지사의 이상준 기자의 안내를 받는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를 취재하던 중, 퇴폐 클럽에서 불합리하게 착취당하는 한국인 호스티스들을 만난 후, 일본의 암흑가가 연루된 한국인 취업 사기 실태를 파헤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상준 기자와 그의 애인 아키코가 죽음을 맞는다. 여기에 83년 칼(KAL)기 격추사건으로 희생된 김희정 기자의 약혼자 이야기가 더해지고, 일본 내 조총련 세력과 야쿠자 세력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룬다. 얼핏 복잡한 동아시아의 정치와 문화를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이끌어낸 대하드라마 느낌의 영화라고 예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안녕 도오쿄>는 메시지보다 철저하게 눈요기를 위한 영화다.
<안녕 도오쿄>(1985)는 거의 모든 장면을 일본에서 촬영한 작품이었는데,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기 전이어서, 관객들에게는 동시대의 다른 나라 풍물을 볼 진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다양한 문화가 꿈틀대던 도쿄의 시가지는 굉장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하라주쿠 보행자천국에서 춤을 추는 타케노코족과 거리를 활보하던 로커들을 보는 것만으로 한국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당시 일본의 최신 유행을 전달하는 메신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이 휙휙 지나가고 나면 이내 성애 장면이 집요하게 이어진다. <안녕 도오쿄>는 일본의 혼욕 풍습이나 밤문화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묘사한다. 일본사회를 비꼬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관객에게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녕 도오쿄>의 일본인들은 모두 철저히 성의 노예, 색욕의 민족처럼 그려진다. 이런 눈요깃거리에 집착하다 보니 이야기는 민망할 정도로 엉성하게 흘러간다. 김희정 기자는 조총련계 조직원들에게 잡혔다 풀려났다를 반복하지만, 용케도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게 취재인지 관광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 된다.
반공영화는 국가의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노출 및 성애묘사에 있어 약간 느슨한 통제를 받았다. 그래서 반공 영화는 본 목적과 상관없이 벗기기 영화로 소비되기도 했다. 일본은 추잡한 섹스 문화로 점철된 나라이며, 여기서 기업형 성매매를 조직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것이 조총련이라는 식의 설정은 ‘반공’과 ‘극일’을 모두 충족했다. 결국 <안녕 도오쿄>는 영화의 줄거리보다도 존재 자체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괴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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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