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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영화 못 만드는 감독. 에드 우드의 <글렌 혹은 글렌다>

by flexwave 2021. 12. 6.

세상에서 가장 영화 못 만드는 감독. 에드 우드의 <글렌 혹은 글렌다>

1,318 읽음201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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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영화 만드는 감독들의 족보를 짚어 올라가면 아마 ‘에드 우드’에서 모두 만나지 않을까? 1924년생인 그는 23살이 되던 해 할리우드로 넘어간 이후 <괴물의 신부>,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시체 도둑들의 밤> 등의 괴작을 쏟아냈다. ‘평가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는 게 그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평이었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하는 <글렌 혹은 글렌다>는 이러한 영화들의 신호탄 같은 영화였다.
 

<b> 여성복 가게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주인공 글렌. 이 사람 바로 에드 우드 본인이다. 직접 주연을 맡아 연기했다. 실제로 그는 이성애자이면서 크로스드레서였다. </b>

<글렌 혹은 글렌다>는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의 일상에 대한 영화다. 실제로 당시 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크리스틴 조긴슨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큰 이슈가 되었다. 실제로 에드 우드는 이성애자이자 크로스드레서였는데, <글렌 혹은 글렌다>는 크로스 드레서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내에게 취향을 고백한다는 내용이다. 냉전이 한참이던 1953년, 미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이런 주제는 상당히 도전적이었다. 잘만하면 사회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걸작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주제를 논하기 이전에 이 영화, 못 만들어도 너무 못 만들었다.

<b> 신문 소품에 대충 오려 붙인 것이 티가 난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이정도 수준이다. </b>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부분 장면이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굉장한 미감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연출력이 없어서였다. (심지어 그의 촬영 감독 윌리엄 톰슨은 애꾸였다고.) 그나마 나누어 놓은 컷들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부족한 연출력은 나레이션으로 때우고 있는데, 다큐처럼 만들어서 당시의 검열을 피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감상하기에 굉장히 괴롭다. 게다가 다른 영화에서 잘라다 붙인 장면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주인공이 군대에 있을 때 훈련받는 장면같이 예산 없이 만들 수 없는 장면들은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뚝’ 잘라다가 ‘떡’ 하니 붙여놨다. 유명한 포르노 영화 제작자를 간신히 설득해 만든 영화다 보니 앞뒤 없는 정사 장면이나 SM 장면들도 많다. 단지 옛날 영화여서, 촬영기법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절대 아니다. 돌이켜보면 1953년은 <로마의 휴일>, <셰인>, <종착역> 등의 명작들이 쏟아지던 해였다. 언제나 할리우드 시상식 하루 앞서 그 해에 가장 못 만든 영화를 뽑는 ‘골든 라즈베리 영화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못 만든 영화 베스트 10에 <글렌 혹은 글렌다>를 올려놓았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도 ‘못 만든 영화’를 거론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b> 아내로부터 앙고라 스웨터를 건네받는 주인공. 아내에게 성향을 고백한 뒤, 착한 아내는 그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산다. 왼쪽이 원작 &lt;글렌 혹은 글렌다&gt;. 오른쪽은 팀버튼이 오마주한 &lt;에드 우드&gt;의 한 장면 </b>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에 왕년의 드라큘라 전문배우 벨라루고시를 출연시킨다. 벨라루고시는 어린 시절 에드 우드의 우상이었다. 생각해보라. 재능도 없고, 돈도 없는 29살 햇병아리 감독이 왕년의 대배우를 설득시킨 것이다. (사실 벨라 루고시도 당시에는 마약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물간 배우였지마는…) 어찌 되었든 에드우드의 열정만은 후배 감독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에드 우드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팀버튼은 조니뎁을 주인공으로 전기 영화 <에드 우드>를 만들었다. 에드 우드가 왜 그딴 영화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그 영화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작품들인지 항명한다. 에드 우드에 대한 오마주는 팀버튼의 다른 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돈 만치니 감독의 <사탄의 인형5 - 씨드 오브 처키>에는 처키의 아들이 이중인격자로 나오는데, 두 가지 인격의 이름이 각각 ‘글렌’과 ‘글렌다’이다. 심지어 유명한 포르노 감독 프랭크 마리노(Frank Marino)까지 라는 패러디물을 연출했을 정도다. 그를 추억하는 영화광들은 지금도 그의 회고전을 열곤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영화광이 에드 우드를 인정하고 있지만, 살아생전의 에드 우드는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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