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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낭만적인 범죄자, 해적

by flexwave 2021. 12. 6.

낭만적인 범죄자, 해적

739 읽음2014.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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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은 인류가 바다에 나가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부터 시작해서 <코란>, <삼국지> 등 인류의 오래된 기록에는 모두 해적에 대한 내용이 있다. 로마제국의 침략에 쪼개진 군소무리들의 생존방법이기도 했고, 일본의 왜구처럼 지방 호족들의 전략적인 경제기반이기도 했다. 특히, 8세기 이후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족,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해적 활동은 한 민족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만큼 커다란 흐름이었다.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넘어 14세기 무렵 지중해에서는 이슬람 세력과 그리스도 세력 다툼의 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이런 국제 범죄자들이 어떻게 오늘날 영화 속에선 낭만적인 쾌남으로 묘사되고 있을까?
1724년 출판된 C.존슨의 <흉악한 해적의 역사>에는 버커니어, 검은 수염, 키드 등 유명 해적들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D.디포는 <해적 싱글턴>을 쓴다. 그의 또 다른 명작 <로빈슨 크루소>도 해적과 관련이 깊은 내용이다. 
<보물섬>의 다양한 변주들. 왼쪽 위부터 <보물섬>(1934), <오손웰즈의 보물섬>(1972). 크리스천 베일이 소년 호킨스로 나오는 <보물섬>(1990).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애니메이션 <보물섬 극장판>(1987)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에서 오늘날 해적 캐릭터에 대한 많은 것들이 완성된다. 소년 호킨스가 보물지도 한 장을 가지고 펼치는 이 모험소설은 아동문학의 걸작으로 잘 알려져있다. 요리사로 신분을 숨긴 해적 존 실버와 소년 호킨스의 관계는 이후 많은 작품에서 변주되면서 해적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해적은 국가가 강제한 제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사는 모험가로 묘사된다. 작가의 어린 아들이 혼자 놀면서 그린 가짜 지도를 보면서 발상이 시작된 <보물섬>에는 기본적으로 모험과 낭만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환상문학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 풍뎅이>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서 해적은 신세계를 경험한 캐릭터로 나온다.
2003년 작 <피터팬>에 등장하는 후크 선장. 제이슨 아이삭스는 놀랍게도 웬디의 아버지 역할로도 등장한다. 이는 피터 팬이 연극으로 상연되던 시절, 후크 선장과 웬디의 아버지 역을 한 배우가 1인 2역으로 맡던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후 해적은 소년들의 모험 이야기에 단골 캐릭터로 등장했다. 불세출의 모험 영화 <구니스>는 해적 애꾸눈 윌리의 보물지도를 입수한 소년들이 역경을 이겨내며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후크 선장은 피터 팬의 근사한 숙적으로 1953년에 월트 디즈니의 <피터팬>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후 스필버그의 <후크>를 비롯해 <리턴 투 네버랜드>,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역시 해적을 소재로 가장 거대하고 긴 모험을 하는 것은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원피스>다. 1997년부터 17년째 연재되고 있는 이 모험은 이제 <드래곤 볼>의 일부 기록들을 갈아 치우며, 전 세계 소년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쾌남형 해적의 쌍두마차. <검은 백조>의 타이론 파워와 <진홍의 해적>의 버트 랭커스트.
소년들의 모험과 상관없는 해적 캐릭터도 있다. 쾌남 배우 타이론 파워가 열연한 <검은 백조>(1942) 는 해적을 또 하나의 섹시 아이콘으로 탄생시켰다. 그는 주로 쾌걸 조로나 총잡이 제시 제임스 역을 맡았던 미남 배우다. 악당에게는 단호하지만 미인에게는 따뜻한 섬세가이. 그런 미인을 등지고 바다로 나가는 멋쟁이 중의 멋쟁이가 탄생한 것이다. 

또 하나의 쾌남 해적은 <진홍의 해적>(1952)의 버트 랭커스트. 완벽한 외모에 두뇌까지 우수한, 그리고 이중배신 끝에, 결국은 동료들과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절대 매력남이다. 이 영화의 재기발랄한 줄타기 전투 장면들은 지금 봐도 성룡의 액션처럼 유쾌하다. 해적 영화는 제법 흥행이 보장된 장르였지만, <컷스로트 아일랜드>같이 요란한 실패작도 있었다. 당시 흥행 감독 레니 할린과 인기 배우 지나 데이비스가 결혼하면서 야심차게 제작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비 대비 가장 망한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왼쪽부터 <하록 선장>, <우주해적 캡틴 하록>, <캡틴 하록>. 하록의 우주 해적선 아르카디아(Arcadia)는 기본적으로 ‘이상향’을 뜻하지만, 서양 미학에서 사랑, 욕망, 죽음 등의 굵직한 주제들과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기능을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창조해 낸 우주해적 <하록 선장>(1982) 도 매력적이다. 풍요와 나태에 찌든 우주시대.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해적을 자처한 하록 선장은 외계인의 침략에 고고하게 맞서는 고독한 늑대다. 전통적인 해적의 이미지에 입체적인 캐릭터를 덧붙인 이 작품은 훗날 수많은 SF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우주해적 캡틴 하록>(2003) 에 이어, 최근 국내 개봉에서 류승룡이 목소리를 연기한 <캡틴 하록>(2013) 도 고독한 우주해적을 비장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해적 잭 스패로우.
글을 닫기 전에,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해적 ‘잭 스패로우’를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을 전복하려는 악의 축도, 의리 넘치는 정의의 사나이도 아닌 잭 스패로우에겐 세상이 정한 선악의 기준 따위는 관심도 없다. 조니 뎁이 모델로 삼았다던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드처럼, 한 세상 록스타같이 신명 나게 놀다 가면 그만인 무정부주의자다. 아마도 이런 점이 기본적으로 범죄자인 해적을 우리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해적은 캐릭터로서의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2014년에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보물섬>의 프리퀼 드라마 <블랙 세일즈>에 등장할, 낭만적인 범죄자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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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