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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다음영화 - 괴작익스프레스&임정원

잔소리로 시작, 잔소리로 끝나는 [리퍼 매드니스]

by flexwave 2021. 12. 6.

잔소리로 시작, 잔소리로 끝나는 [리퍼 매드니스]

367 읽음2014.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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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나는 컬트영화 <리퍼 매드니스>
<리퍼 매드니스>(1936)는 오늘날 ‘컬트(Cult)’라고 불리는 영화 중에 아마도 가장 나이가 많은 영화일 것이다. 1910년대를 지나면서 거대 영화사가 아닌 소규모 영화사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실험적인 예술영화와 B급 영화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리퍼 매드니스>는 이런 흐름과도 좀 다르게,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마리화나를 추방할 목적으로 미국 정부와 기독교계의 자금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계몽 영화다.
 
메이와 잭은 마리화나를 매매하는 범죄자 커플이다. 이들은 랄프와 블랑쉐를 끌어들여 마리화나 밀매 조직을 만들고, 순진한 십 대 청소년들을 유혹해 마리화나 중독자로 만든다. 그렇게 마리화나를 피운 젊은이들은 자동차를 몰다가 행인을 치고, 여학생을 강간하고, 살해하고, 자살한다.

스포츠를 즐기며 바르게 자라고 있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마리화나의 늪으로 빠트리는 악당들

<리퍼 매드니스>는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악마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표현이 굉장히 과장되어있다. 게다가 배우들도 대부분 정식으로 배우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서 연기가 많이 어색하다. 대사를 버벅거리는 장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의 내용도 별 개연성 없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마리화나를 피우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식이다. 특히 마리화나를 피는 장면은 그들만의 쾌락과 광란을 보여주기 위해 굉장히 몰입도 넘치게 편집되어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기괴하고 감각적일 정도다.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나는 영화 &lt;리퍼 매드니스&gt;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전용 영화가 그렇듯이, <리퍼 매드니스>는 엄청나게 지루한 영화다. 인트로부터 마리화나의 나쁜 점에 대한 잔소리로 시작해서, 영화의 마지막은 교장 선생님 콜맨의 훈화로 끝난다. 교장 선생님은 특히 학부모들을 상대로 준엄한 훈계를 하시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원제인 ‘Reefer Madness’가 아닌 ‘Tell Your Children’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롱테이크의 훈화 말씀과 파격적인 마리화나 흡연장면이 냉탕과 온탕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이 영화의 엉성한 만듦새가 후대의 젊은 영화광들에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마약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마약에 빠지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마리화나의 해악이 많은 부분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대두하면서, 이 영화는 젊은이들에게 재발굴되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취급을 받는다. 요즘은 이 영화를 만든 미국에서조차 마리화나에 대한 관련 법규가 완화되고 있는데, <리퍼 매드니스>는 아직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사랑받고 있다.

마리화나를 피는 장면의 황홀한 표정만은 일품인 &lt;리퍼 매드니스&gt;의 배우들

마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따라 하며 비아냥대는 자의식 강한 아이들처럼, 이 영화는 기성세대를 조롱할 때 쓰는 젊은이들의 컬트 클래식이 되었다. <리퍼 매드니스>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엉망인 영화이지만, 이상하게 마리화나 피는 장면의 황홀한 표정만은 일품이어서, 오히려 이 영화가 마리화나를 피고 싶게 만든다는 농담이 오고 갈 정도다. 그래서 레이브파티의 VJ들은 <리퍼 매드니스>의 마리화나 피는 장면만을 편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지역 신문에는 한 칼럼니스트가 <리퍼 매드니스>의 마약 딜러인 ‘메이’와 교장 선생님의 이름 ‘콜맨’을 합쳐 ‘메이 콜맨(Mae Coleman)’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마리화나를 리뷰하고 예찬하는 글을 연재했었다.

어쨌든 모든 선전 영화는 언젠가 괴작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의견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적인 것부터가 괴이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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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정원